[기고] 혁신 그리고 CIO

혁신과 기업가 정신
경영학의 거장 피터 드러커(Peter F. Drucker)는 「미래사회를 이끌어가는 기업가 정신」이란 글에서 미국이 IT 등의 도입에 의한 생산성이 향상되면서 일어날 수 있는 고용 감소가 발생하지 않고 오히려 꾸준히 증가했으며 그 원인 중 하나가 ‘기업가(entrepreneur) 정신에 의한 혁신(innovation)’이라고 설파했다. 조금 확대 해석을 해보면 IT화에 의한 경쟁력 향상이 기존산업의 해외이전의 필요성을 연장시켰거나 국제경쟁력을 강화시켰을 것이다.

흥미있는 것은 공공분야에서도 이러한 기업가 정신에 의한 혁신으로 고용이 증가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다소 의외일 수 있지만 짐작해 보면 비효율적으로 진행되어서 과다한 투입과 신통치 않은 서비스 산출물이 나타나던 분야에 기업가적 운영과 혁신으로 인해 동일하거나 작은 비용으로 오히려 고품질의 서비스가 발생하고 고용이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84년 로스엔젤레스 올림픽에서부터 미국이 기업가를 준비위원장으로 임명해 최초로 흑자 올림픽을 만들었다고 자랑하던 기억이 나는데 아마 이러한 사례에 해당되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기업가 정신에 따른 효율적 운용으로 남는 재원들은 또 다른 공공서비스에 투자할 여력을 갖게 하고 그로 인한 고용창출도 가능할 것이라 여겨진다.

혁신 그리고 IT
「노동의 종말」이라는 선정적인 제목으로 선진국 고용문제를 언급한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이 생산성 향상으로 인한 고용감소를 제3섹터방식의 공공서비스 분야에 대한 정부 지출확대를 해법으로 들었는데, 당시에는 선진국의 배부른 해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만약 이러한 투자가 혁신에 의한 서비스 향상으로만 연결된다면 마땅한 선택일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혁신의 문제가 컴퓨터 출현 이후에 지식산업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에서부터 ‘혁신 = IT화’라는 등식을 만들어 버려서 혁신이 주제로 등장하면 모두 IT를 들고 나오고 그 덕분에 CIO(Chief Information Officer)라는 직종이 각광을 받아왔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90년대 중반 1,000대 기업 중 90% 이상이 CIO를 활용하고 있고 연방정부는 물론 주정부에 이르기까지 CIO 채용을 의무화할 정도로 CIO가 보편화되어 있다.

IT가 어느 정도 포화현상을 보이는 지금은 IT에 대한 어떠한 접근이 타당할 것이고 CIO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우리나라의 경우도 정부부처나 기업들이 혁신이라고 하면 으레 IT라는 단순논리를 못 벗어나서 모두가 IT를 추진한다고 하는데 되짚어 보아야 할 일이다. 그동안 우리 정부나 기업은 전자정부를 비롯해 ERP, BPM, SCM 등 수많은 분야와 프로세스에서 IT를 도입하였고 그로 인해 혁신과 기업경쟁력을 이끌어 왔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혁신은 지금하고 있는 업무의 핵심역량을 변화시키는데 있고 IT는 그 수단 중의 하나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IT는 기업이나 정부의 경쟁력과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하나의 열쇠일 뿐이지 모든 문을 열어주는 만능열쇠가 아니라는 것이다.

혁신과 CIO의 운명
따라서 IT를 맹목적인 혁신의 수단이 아닌 혁신을 위한 핵심요소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CIO의 역할도 변화되어야 한다. 과거 국내 기업들은 정보기술과 정보시스템을 담당하는 부서를 단순히 기업의 부속 지원 기능처럼 여기고 IT를 구축하는 것에만 의미를 부여하곤 했다. 즉, IT조직을 단순히 비용 절감을 위한 기술자 집합체쯤으로 여길 뿐, 기업 경쟁력의 원천으로 인식하지 못했다. 매출이 수 조원에 달하는 기업에서조차도 CIO를 경영전략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직제로 여기고 혁신을 추진해 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디지털시대에서 CIO는 과거처럼 통상의 단순한 IT기술의 적용을 벗어나서 아직 업계에서 표준화되지 않았거나 업계를 리드하는 핵심프로세스를 IT로 구현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이고 따라서 조직 전체의 업무를 더 깊이 이해하고 가용한 IT기술을 적용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지금도 대부분의 기업은 IT에 토대를 둔 네트워크의 일부로 편입된 상황이고, 5~10년 뒤에는 모든 비즈니스 프로세스가 근본적으로 IT를 근간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미 선진기업들은 CIO나 IT조직을 단순히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이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프로세스 혁신과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할 수 있는 전략적인 자원으로 관리하고 있다.

세계적인 정유회사인 BP(Britsh Petroleum)의 경우, 정보시스템을 표준화하고 각국에 흩어져 있던 데이터센터를 통합하여 50%의 프로세스 효율을 이뤄냈다. BP는 프로세스 혁신에 그치지 않고 정보시스템의 핵심임무를 거래지원서비스 제공에서 전략적 비즈니스 파트너로 변모시켰다. 또한 ‘정보기술관리자’란 단어를 포함하는 모든 직함을 없애고 사업부서와의 더 밀접한 제휴를 반영하기 위해 ‘비즈니스 정보파트너’로 변경하였다. 이는 회사 내에서 IT조직의 새로운 역할, 즉 정보기술과 경영전략과의 일치 그리고 새로운 비즈니스 창출의 근원으로 발전시키려는 의지로 볼 수 있다.

CEO와 CIO
따라서 CIO는 정보기술과 이를 활용하기 위한 기술적 지식과 경험은 물론 사업운영에 대한 지식과 전략적 안목을 가져야 한다. CEO도 CIO와 의사소통이 절실히 요구되며 CIO가 회사의 여러 비즈니스에 대한 지식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CIO가 조직의 최고의사결정기구에서 배제된 상태에서 IT에 대한 문외한이라고 할 수 있는 최고경영자들과 스텝들이 회사의 비전 달성을 위해 전략적으로 IT를 활용하는 방안을 찾아낸다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CIO들도 그들만의 특수하고 신비스런 기술이나 전문용어의 구사에 초점을 ��추기 보다는 기업의 경영전략과 비전에 보다 관심을 가져야 한다. CIO는 자신이 속한 산업, 비즈니스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읽고 조직이 핵심 경쟁요소를 갖추기 위해 IT를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에 대한 방안을 CEO에게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쩌면 벌써 CEO와 CIO의 경계는 허물어져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CEO도 이제는 기업가 정신에 의한 혁신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그 도구로서 때로는 CIO의 마인드가 필요하다. 언젠가 시티은행의 부사장이 "우리는 은행을 가장한 소프트웨어 회사다"라는 말을 한 것을 기억한다. 바로 여기에 CIO의 미래상이 담겨져 있다. 엔터프라이즈 아키텍처(EA), 정보기술 아키텍처(ITA)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는 것도 핵심역량과 더욱 밀착되어가는 IT와 CIO의 역할을 웅변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고현진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