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 Queen Effect와 블루오션 전략

콩 값은 폭등하고 있는데 두부 값은 오히려 내린다.
이것이 현재 우리 대한민국의 섬유산업이 처해있는 현실입니다. 설상가상으로 달러마저도 장기간 폭락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 수출업체의 상황도 매우 어렵습니다. 이런 위기 국면에도 우리 업계가 좌절하지 않고 그나마 어려운 살림을 꾸려 가고 있는 것이 오히려 기적 같아 보입니다. 뒤에서, 중국의 기술은 엄청난 속도로 우리의 시장을 잠식하고 있고 앞으로, 유럽 선진국들의 기술 수준은 우리가 도저히 넘볼 수 없는 거대한 장벽으로 가로막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진퇴양난에 빠진 이유가 뭘까요?
그 이유는 몹시 단순합니다. 과거 20여 년간 우리의 섬유 산업은 발전이나 진보는커녕 날이 갈수록 퇴보를 거듭해 왔기 때문 입니다. 중국이 저임금으로 무장한 막대한 노동력과 정부의 강력한 지원에 힘입어 엄청난 속도로 압박해 오고 있는 동안에도 우리가 가진 위기 의식의 안테나는 꺼져 있었습니다. 중국이 넘볼 수 없는 우리만의 첨단 가공 기술들을 개발하고 연구 노력하는 대신, 그저 남들이 개발하여 상품화에 성공한 아이템들을 베끼기에 급급한 불공정 경쟁이 업계전체에 만연되어있었습니다. 전체의 생존을 위한 공영의 노력보다는 이기주의를 앞세운 도덕적 해이로 공멸의 길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아직까지도, 전략도 마케팅도 필요 없이 만들기만 하면 팔리던 6-70년대 나일론 시절의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의 섬유 산업은 녹슨 철로 위에 멈춰 서 있는 기차입니다.

붉은 여왕 효과(Red Queen Effect)
붉은 여왕은 영국의 수학자인 루이스 캐롤(Lewis Carroll)이 쓴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의 후속작인 ‘거울나라의 엘리스’에 나오는 체스 판의 말 중의 하나로 경이로운 달리기의 소유자 입니다. 붉은 여왕이 속해있는 나라는 늘 주변경치가 움직이고 있으므로 제자리에 머물기 위해서는 늘 달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엘리스는 붉은 여왕의 손을 잡고 죽어라 하고 뛰지만 아무리 뛰어도 제자리에 머물 수 있을 뿐입니다. 이런 엘리스에게 붉은 여왕은 말합니다. “엘리스야 제 자리에 있고 싶으면 죽어라 뛰어라”고.
이런 레드퀸 효과를 다른 말로는 진화적 군비확장 경쟁(Evolutionary Arms Race)이라고도 합니다. 인간은 박테리아를 죽이기 위해서 수 십 년 동안 고 단위의 항생제를 개발 했지만, 그 결과로 박테리아들이 박멸 되기는커녕 오히려 내성이 강한 슈퍼박테리아로 키우는 결과를 만들어 냈습니다. 박테리아들은 생존을 위한 방어본능으로 강력한 항생제들을 물리 칠 수 있도록 자신들의 군비를 확장하여 진화 하였습니다. 그리고 살아 남았습니다. 치타에게 쫓기는 가젤은 먹히지 않기 위해 보다 강한 뒷다리를 갖춤으로써 점점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도록 진화하였고 반대로 굶지 않으려는 치타의 생존본능은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포유동물로 진화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처럼 변화하는 세계에 발 맞추어 자신도 함께 변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지구 상에서 사라진 수많은 동물과 식물들처럼 우리도 멸종 하고 맙니다. 변화에 발 맞추지 못하고 멈춰있는 지금 우리의 섬유 산업은 멸종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는 변해야 합니다.

생존의 경영전략
우리는 Red Ocean(레드오션)의 바다에 빠져 있습니다. 레드오션은 경쟁이 심화된 환경의 산업분야를 말합니다. 레드오션에서는 서로간의 목을 죄는 치열한 경쟁으로 시장은 유혈의 붉은 바다가 되어 있습니다. 섬유 산업에서의 레드오션은 제직분야 입니다. 제직의 기술 수준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평준화 되었으며 현재 중국의 기술 수준으로 짜지 못하는 직물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제직기술의 기반 또한 허약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런 치열한 경쟁의 바다에서 승리 할 수 있는 Hidden card를 우리는 단 몇 개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또한 제직은 소재에 있어서 지극히 단순한, 물리적이고 기계적인 변화이며, 이런 소극적인 Factor로 다양한 소비자의 감성을 쫓아 가기에는 역부족일 것입니다. 이미 레드오션의 복마전으로 변해 버린 제직을 과감하게 버리지 못하고 시설을 중국으로 옮겨 가면서까지 구태의연한 이 산업을 이어나가려고 했던 많은 화섬 기업들은 참담한 실패를 맛보았으며 이런 실패는 처음부터 예정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미 개척 시장공간인 Blue Ocean(블루오션)으로 들어 가야 합니다.
새로운 수요 창출과 고 수익을 만들 수 있는 블루오션에서는 아직 게임의 규칙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다른 경쟁자들 특히 중국과 경쟁하지 않아도 됩니다. 소재의 화학적인 변화는 단순하고 물리적인 제직과는 달리 복잡하고 엄청나게 많은 다양성을 만들어 냅니다. 제직처럼 복제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또 그런 일을 해 낼 수 있는 인적인 인프라와 Software를 구축하는 데는 아무리 중국이라도 상당한 시일이 필요 합니다. 중국이 그렇게 주춤하는 사이에 우리는 또 다른 블루오션을 창출하면 됩니다. 우리는 가공과 신 소재라는 푸른 바다를 헤엄쳐 가는 붉은 여왕이 되어야 합니다.

가치혁신(Value Innovation)
지금 세계는 Smart섬유라는 블루오션을 창출하기 위한 선진국들의 노력이 경주 되고 있습니다. Smart섬유는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는, 살아있는 세포처럼 기능하는 원단입니다. 솔방울은 맑은 날에는 비늘을 모두 열고 숨 쉬다가 비가 오면 모든 비늘을 접고 방/발수 모드로 들어 가는 놀라운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생물의 기발한 기능을 인간 공학에 도입하려는 과학(Biomimetics)이 최근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원단은 발수나 방수처리를 하게 되면 통기성은 포기할 수 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Goretex가 그런 문제를 일부분 해결 하기는 했지만 투습방수 원단이라고 하더라도 실제로 통기성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나쁩니다. 만약 솔방울처럼 비가오면 기공을 닫고 맑은 날은 기공을 모두 열어 완벽한 통기성을 유지할 수 있는 Smart원단을 개발 할 수 있다면 이는 섬유소재에 있어서 새로운 차원의 Paradigm을 이룩하는 일이 됩니다. 더 나아가서 이 같은 반응이 온도의 고 저에 따라 조절 될 수 있다면 더욱 꿈 같은 세상이 펼쳐지게 됩니다. 더우면 창문을 열어 공기를 소통시키고 추우면 창문을 모두 닫습니다. 이것이 미래의 우리 원단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이러한 스마트 섬유를 개발 하려는 시도는 종래의 레드오션을 지탱해 왔던 단순한 차별화 전략과는 다릅니다. 이런 시도는 바로 가치 혁신에 해당 하는 전략입니다. 가치혁신은 기술혁신이나 시장 선구자와는 구분되는 개념입니다. 새로운 제직 같은 혁신 없는 가치는 작은 규모의 가치를 생산 할 수 있을 뿐입니다. 혁신은 있으되 가치가 없는 기술 위주의 신 소재나 너무 미래지향적인 제품은 소비자가 기꺼이 가격을 지불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가치와 혁신,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한 우리 섬유업계의 또 다른 전략은 바로 소비자의 감성에 호소하는 것입니다. 기능적인 면이 아닌 소비자의 감성에 호소하는 섬유 소재에 있어서의 블루오션은 이를 테면 초극세사의 발명 같은 것입니다. 초극세사 즉 Micro에 Peach를 한 표면의 촉감은 그때까지 세상에 존재한 적이 없었던 희한하고도 놀라운 Hand feel을 창조한 것이었습니다. 혹시 최근에 만들어지고 있는 봉제 곰 인형을 만져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초극세사의 High Pile직물을 이용하여 만든 요즘의 봉제인형이 가진 촉감은 놀라울 정도로 부드럽고 매력적인 Touch입니다. 초극세사가 발명 된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Micro를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촉감의 세계는 계속 진화되고 발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블루오션을 추구하는 우리는 소비자의 객관적인 Needs 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감성과 혼을 같이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소비자와 똑 같은 감각과 정신세계를 공유해야 합니다. 소비자의 감성과 동 떨어진 연구원의 Mentality나 기술자의 개발 노력은 허공을 향한 헛 발길질에 지나지 않습니다. 소비자와 Buyer의 Needs를 정확히 읽어야 제대로 된 개발이 가능하게 되며 새로운 블루오션을 창출 할 수 있게 됩니다.
그 첫 단계가 업계간의 교류 입니다. 산업현장과 Marketing업체 그리고 연구소와 학교간의 유기적인 교류가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새로운 블루오션을 창출 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 할 수 있습니다. 그 동안 각 업계간의 커뮤니케이션은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깊고 푸른, 거대한 강으로 가로막혀 있었습니다. 우리의 산업은 손과 발 그리고 머리가 따로 움직이는 헌팅턴병에 걸린 거대한 공룡이었던 것입니다. 각 업계간의 새로운 교류는 그 동안 흙 속에 묻혀 있었던 엄청난 시너지를 원천으로 붉게 물든 경쟁의 바다였던 우리의 시장을 맑고 푸른 수익성의 바다로 바꿔 줄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제품 원가의 저 비용구조로 우리 상품의 경쟁력을 높이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원단이라도 너무 비싼 가격은 소비자에게 Appeal하기 어렵습니다. “Made in korea”라는 Brand name이 가진 한계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품의 원가를 차지하는 요소 중 소비자의 관심을 끄는 Hot Spot을 강조하고 그렇지 못한 부분은 과감히 제거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예컨대 Combed cotton과 Carded cotton의 가격차이는 상당하지만 대부분의 소비자는 그 차이를 잘 모릅니다. 30수 단사와 60수 합사의 차이를 인식하는 소비 계층도 매우 얇습니다. 이런 대상은 Cool spot에 해당 합니다. 반면에 원단 표면의 Hand feel이나 촉감, 아름다운 color는 소비자들이 매우 예민하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우리가 비용을 쏟아 부어야 하는 Hot spot이 바로 그런 곳입니다. Hot Spot과 cool Spot에 고른 비용을 분배하게 되면 투입되는 원가에 비해 그 결과물의 성과는 예상보다 저조하기 마련입니다. 반대로 같은 비용으로 Hot Spot에 집중 투자하게 되면 예상치 못했던, 훨씬 더 좋은 결과와 만나게 될 것입니다.

블루오션 전략의 측면에서 분석해 본 우리의 국산 면직물 아이템이 중국 아이템과의 경쟁에서 진 까닭은 비교적 단순합니다. 사실 우리가 동종의 중국 제품보다 Buyer에게 더 낫다고 호소할 수 있는 요소는
1) 제직 결점이 적다
2) 원단 표면이 중국산에 비해서 거칠지 않고 더 곱다.
3) Color matching이 우수하다.
정도인데, 옷을 사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위에 열거한 차이점을 제대로 인식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즉 소비자가 옷을 고르는데 있어서 국산제품이 중국산에 비해 명확하게 우위에 설 수 있는 강점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산의 가격이 우리보다 30%이상 더 싸다면 Buyer는 기꺼이 위의 장점들을 포기하고 중국산을 택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중국산과의 경쟁에서 지게 된 이유입니다. 따라서 국산 면직물은 중국산에 밀려 퇴출 당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뒤 이어 화섬도 마찬가지의 경로를 밟고 있으며 절망적이고도 안타까운 몸부림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가 택해야 할 전략은 중국산이 넘볼 수 없는 새로운 감성을 지닌 블루오션을 창출하여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일입니다.

Dupont의 Coolmax를 예로 들어 보지요.
우리나라를 세계 최대의 섬유 강국으로 부상 시켜주었던 대표적인 합섬 소재인 Polyester는 이제는 너무나 식상하여 이미 소비자들로부터 외면 받아 죽어가고 있는 대표적인 사양아이템입니다. 하지만 Coolmax는 이렇게 한물간 Polyester소재로부터 놀라운 블루오션을 창출하였습니다. 듀폰은 흡습성이 나쁜 전형적인 합성 소재인 폴리에스터에 ‘흡한속건’이라는 간단하고도 기발한 기능을 부여함으로써 단번에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Coolmax는 등산인구의 폭발적인 증가라는 시장의 변화와 맞물려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그로써 지금 Coolmax를 Polyester로 인식하는 소비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블루오션을 창출함으로써 기존의 소비자는 물론 Polyester의 수요와는 전혀 상관 없던, Outdoor sports를 취미로 하는 완전히 새로운 수요층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블루오션 전략이며 우리가 취해야 할 3번째 단계입니다.

중소 기업의 전략
하지만 Coolmax같은 새로운 원사의 개발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이런 일에는 막대한 자금과 뛰어난 인적 자원 또 그에 상당하는 다양한 인프라의 구축을 요합니다. 따라서 중소기업들이 쉽게 손 댈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금력과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이 창출 할 수 있는 블루오션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그 가까운 예가 바로 대한민국 섬유의 Flag ship으로 7년간 수 십 억 yd를 선적한 적이 있는 200d Moleskin이라는 히트 상품입니다. 이 아이템은 새로운 소재도 아니고 새로운 제직이나 가공기법도 사용하지 않았지만 7년에 걸쳐서 전 세계 Lady’s Garment 소재시장을 석권한 한국산 Polyester직물의 아이콘으로 당당하게 군림하였습니다. 어떤 Polyester직물이 개발되어도 순식간에 복사해 내던, 중국의 승승장구 하고 있던 기술로도 도저히 이 아이템의 까다로운 Brushing공정과 염색방법을 극복 할 수 없었습니다. 곧 우리의 기술 경쟁국인 대만이나 터키가 몇 년 되지 않아 우리와 비슷한 Quality에 도달 하여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그 동안 대량 생산으로 가능해진 한국의 경쟁적인 가격을 따라 잡을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Mole skin은 경쟁에서 살아 남게 되었고 Long run이 예정되어 있는 듯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우리 업계가 이 아이템을 이어나갈 수 있는 다양한 대체품을 개발하는데 주력했더라면 우리에게는 절호의 찬스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박힌 뿌리 깊은 불공정 관행의 병폐는 그런 최고의 기회마저도 저버렸습니다. 우리는 건설적인 Win Win전략을 택한 대신 Moleskin이 수명을 다 해서 죽어 넘어질 때까지, 모든 Poly 제직 업체들이 죽으나 사나 오로지 인기 좋은 이 아이템만을 짜는데 광분하는 공멸의 전략을 선택했습니다. 이러한 과열경쟁과 초과공급으로 인하여 최초 4불 대의 Better Group에 머물렀던 이 아이템은 결국 1불 이하의 싸구려 Basic 아이템으로 전락하면서 시장에서 사라지기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창조한 블루오션을 스스로 피투성이가 난무하는 레드오션으로 만들고 다 같이 자멸 한 것입니다.

공존공영의 전략
우리 섬유 업계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이런 상품을 학계와 연구소와의 긴밀한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시장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스스로 개발하지 않고 남들이 상품화에 성공한 제품을 베끼려고만 드는 나쁜 악습이 남아 있고 수출자에게 주어진 신용장 거래의 막대한 Advantage를 자신의 작은 오더수주를 위해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으로 내팽개쳐 버리는 타락한 상도의가 아직도 만연해 있습니다. 스스로 뼈를 깎는 자성 없이는 아무도 우리 산업을 지켜 주지 않습니다. 우리의 적은 중국이 아니라 우리 내부에 있는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