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름 / 12,000 원 320 p / 2004.10.28

1975년 '비즈니스 위크'가 종이 없는 사무환경의 도래를 선언했을 때 사람들은 "역시 비즈니스위크"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비즈니스 위크 특유의 분석력에 대해 아무도 의혹을 제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 종이 소비량은 당시의 2배 수준으로 늘어났다.

SF 영화의 배경으로나 2000년대를 느낄 수 있던 그 시절, 2000년은 컴퓨터 만능 시대로 그려졌다. 사무실에 출근할 필요도 없고 집에서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란 게 당시의 미래 지형도였다.

존 실리 브라운 등이 지은 ‘비트에서 인간으로’ 는 왜 이 같은 지형도가 잘못된 것인가를 파헤치고 있는 책이다. '인간의 얼굴을 한 정보화'란 말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 책은 "인간과 사회적 환경을 무시할 때 정보화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한다.

1980년대 초반 한 미래학자가 "뭔가를 종이에 끄적 거린다는 건 머지 않은 장래에 무척 원시적인 일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을 때, 그는 이 책에 따르면 '정보의 어두운 터널'에서 헤매고 있었던 셈이다.

지금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종이에 뭔가를 쓰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정보통신 담당 기자들은 아직도 '고색창연한(?)' 기자 수첩을 들고 다닌다. 취재활동에까지 PDA나 노트북을 동원하는 기자는 별로 못 본 것 같다.

저자들은 이런 모순(?) 아닌 모순(!)에 대해 "정보화라는 침대에 인간의 키를 맞추려 애쓰지 말라"고 주장한다. 지나치게 정보 위주로 접근할 경우 정보화가 우리들에게 줄 것은 불행 밖에 없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그런 점에서 '비트에서 인간으로'가 자리잡고 있는 곳은 '인간과 정보'의중간 지점이다. 굳이 경중을 가리라면, 정보보다는 차라리 인간 쪽에 가깝다.

저자들의 이 같은 시각이 잘 드러난 부분이 바로 '프랙티스'론이다. '프랙티스와 프로세스'란 장에서 저자들은 요리 배우는 과정을 통해 '프랙티스'의 중요성을 설명해 준다.

요리책으로 일반적인 요리법은 설명할 수 있을 진 몰라도 요리사의 노하우를 그대로 전수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는 것. 따라서 요리사의 노하우를 고스란히 받아들이려면 요리사와 함께 하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그 것이 바로 이 책의 '프랙티스' 개념이다. 비트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얻기 위해선 '사회적인 틀' 속에서 함께 해야 한다는 것. 그 것이 '비트에서 인간으로'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골자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들은 '정보화' 다음에 '지식경영'이 득세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강조한다. 정보화는 필연적으로 한계를 드러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소유자'와 밀접한 관계를 지닌 지식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저자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정보화 만능주의'를 경계하는 이 책의 논지는 이처럼 명쾌하다. '열 권의 매뉴얼보다 한 명의 동료가 낫다'는 이 책의 아포리즘은 "왜 재택근무가 현실화되지 않을까?"에 대한 단순 명료한 해답인 것 같다.

정보화와 지식경영이라는 숙제를 놓고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간적인 정답을 제시해 주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자 존재이유다. 아직도 정보화만 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란 '환상 속의 그대'들에겐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

사족.

부끄러운 고백 하나. 사실 난 지독한 '기계치'다. 휴대폰 음성 메시지 들을 줄 몰라 낭패를 당할 정도니. 간단한 기계나 형광등 같은 것들이 고장나면 가슴부터 뛰는 체질이다. 당연히 이런 건 아내 몫으로 넘겨준다.

'비트에서 인간으로'가 감동적이었던 건 '인간적인(?)' 나와 너무나 잘 어 울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컴퓨터가 고장나면 무조건 옆 사람을 부르는 체질인 나는 이 책을 '내 기준으로 읽으면서' 자그마한 위안을 얻을 수 있었던 것. 적어도 기계가 전부는 아니라는 '나름의' 정당화도 할 수 있었고. 사회적 맥락에서 정보기술과 지식 경영의 미래를 다시 설계하라는 이 책의 주장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자. 그럴 때 '텍스트'에서 '콘텍스트'로의 화려한 변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아이뉴스24(www.inews24.com)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